하루에 학교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15시간인데 야간자율학습까지는 도저히 못하겠다는 한재혁(가명, 고2 남)은 비밀이 유난히도 많았다.
한여름 무더위에도 왼쪽 팔목에서 풀지 않는 큼지막한 손목시계, 그 밑의 불에 덴 듯 붉게 오그라들어 튀어나온 숱한 자해의 흉터들을 나에게 보여주기까지 재혁이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첫 만남에서, 아이의 사연을 듣기 전에 나는 아이의 의심과 적대감을 예상하고 내 소개를 했다. 나는 너를 돕고 싶은 어른 친구이다. 네가 친구를 때렸다 해도, 도둑질을 했다고 해도 우선은 네가 왜 그런 행동을 선택했는지 네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할 것이다.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앞으로는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도록 같이 고민을 할 것이다. 나는 네 편이다.
재혁이에게 여러 차례 나의 마음을 증명하고 확인시켜 줘야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느 날 새벽, 재혁이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부엌에서 칼을 가져다가 소독해 놨으며 이제 손목에 대려한다는 내용이었다.
무엇이 재혁이의 사고를 엉키게 만들었을까? 나는 모른다. 하지만 재혁이가 나 자신보다 잘 되기를 내가 바란다는 것을 재혁이가 이제는 믿는다. 나를 협박해서 조정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누군가 같이 깨어서 옆에 있어준다는 느낌의 요구, 재혁이는 지금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30분 정도 문자를 주고받은 후 아이가 칼 대신 담배를 선택했고, 나는 고마워했다.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새벽의 잿빛공기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회색으로 물들이며 동이트길 기다릴 재혁이를 생각하니, 그날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청소년들을 상담하기 전, 나는 자살미수의 행동들을 혐오했다. 정말 죽을 것이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성공률이 높은 방법을 택했어야지, 발견되기 쉬운 장소에서 치명적이지 않은 방법을 써서 가까운 사람을 위협하는 행위가 싫었다.
하지만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당사자는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다는 것을 잘못된 방법으로 밖에는 표현 할 줄 모르는 것이다. 상담이 참 어렵다.
그 일이 있은 후 1개월 쯤 지났을 때, 재혁이가 자신의 진로를 화학과에서 상담심리학과로 바꾸겠다며 나에게 월급이 얼마나 되냐고 묻는다.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경계성 성격장애
자기애성 성격장애
